▣ 목차
◈ 시작 - 위기 - 극복만으로는 부족하다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작법의 가장 기본적인 5막 구조를 포기했습니다. 발단 - 전개 - 위기 - 절정 - 결말이라는 단계는 없는 셈치고, 전개 - 위기 - 극복이라는 구조로 이야기를 구상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럴수가.
"위기"를 구상하다보니 왜? 어째서? 라는 가지치기로, 시작부분까지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결과가 나오려면 어떤 일이 있어야 했고, 왜 그런 일이 있어야 했지? 라고 말입니다.
시작과 위기와 극복이 정해지다니. 그때에는 그 3단계 혹은 2단계로 이야기의 모든 내용이 다 정리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는데, 제길. 정작 깊이 파고 들어보니 시작이 있고 위기는 닥쳤는데, 그 사이에 뭘 해야 할지가 붕 뜨는 것이 아니겠습니다.
최근에 내가 이웃을 걸어둔 블로그에서 새삼스럽게 좋은 정보들을 얻었는데, 그 블로그의 글 중에서도 (그 블로그의 작법내용은 대개 작법서의 내용을 요약발췌해 둔 것이지만) 그런 말이 있었습니다.
시나리오 작업에서 결말 5분, 클라이막스 15분, 도입부 15분은 대부분 다 내용을 다 생각해 둔다. 하지만 전체의 2/3를 차지하는 전개부분의 내용을 제대로 채우기 못해 고민한다.
하하하.
나랑 똑같다.
결국, 지금까지 계속 힘들어했던 건 3막구조 때문도, 5막구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힘들었던 것은 시작점에서 끝에 도달하게 해 주는 경로. 중간과정을 설정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 위기 - 극복이라는 뭉뚱그린 3막 구조(혹은 2막구조)로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고 해도, 결국 중요한 것은 "처음"이라 부르는 부분의 내용입니다. 즉, 발단 - 전개에서 "전개"가 필요한 셈입니다.
◈ 내 멋대로 시퀀스 분석 (1) 드라마 <악귀>
위기와 극복에서만 출발했던 제 이야기의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누군가가 우리를 위협하고
- 주인공은 일행을 그 위협으로부터 지키고
- 우리는 우리를 위협하는 ”흑막“의 존재를 알아내고
- 흑막을 쓰러뜨린다
여기에서, "전개"에 해당하는 내용은 <일행을 위협으로부터 지킨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지키지?
"전개"는 전체 구성의 2/3를 차지할 정도로 양이 많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일행은 지킨다> 이거 하나로 양을 늘리려니 어떻게 해야 감이 안 잡히더군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라고는 그냥 눈앞의 총칼 앞에서 방패가 되어주는 것 정도. 그런데 그 한 장면으로 전개 부분을 다 메울 수는 없잖아.
뭐, 다음과 같은 패턴을 반복하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적1이 위협 - 적의 위협을 막아내고 - 물리치기.
다시 적 2가 등장 - 그를 막고 - 물리침
적3이 재도전 - 적3을 막아내고 - 물리침.
어쨌든, 제가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내용이 너무 빈약해서 외부의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 대상은 요즘 S본부에서 금토 드라마로 방영 중인 <악한 귀신>. 올해만 해도 꽤 재미있게 본 드라마들이 많은데, <악귀>가 현재진행형이라 그런지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제가 즐겨보는 드라마인 것도 있겠지만요.
아직 완결이 나지 않은 드라마이지만, 그래도 대충 흐름은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0. 주인공의 간략한 소개(도입부)
1. 악귀 들림.
2. 악귀 들린 것을 믿지 않음.
3. 보이스피싱범, 할머니가 돌아가심
>제1관문 : 수동적인 태도에서 전환.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하는 계기.
4. 단서찾기 (1) 장진리 주민과 컨택. 자살귀 사건. 서브 사건 발생
5. 단서찾기 (2) 백차골 방문. 객귀 사건. 서브 사건 발생
6. 메인 플롯 회귀. 아귀 사건 - 우진 존재 부각
7. 악귀의 비밀 밝혀짐. 동료간 균열
8. 균열 봉합. 새로운 단서 발견. 새로운 위기
9~12 (추측)
새로운 단서를 계속 추적. 새로운 위기가 잘 극복될지는 모르겠음(3화의 법칙. 보통 아군 중 하나가 리타이어함) 악귀를 없애는데 실패(그에 대한 지적은 이미 나왔음).
> 위기
전열재정비(응?) 재도전.
> 절정
최종보스전
> 결말.
이 중에서 위기, 절정, 결말은 크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습니다.
그 부분은 이미 저도 다 구상을 해 놓았습니다. 또, 여러 작법서에서 본 바에 따르면, 위기에서는 반전(새로운 비밀이 밝혀짐), 주인공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위기에서 한 번 실패하고, 절정에서 뭔가 다른 방법 혹은 선택을 한 뒤, 재도전을 하겠지요. 이야기의 방향성이 정해져 있어서 구상하기도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양이 가장 방대하고, 방향성도 정해지지 않은 "전개" 부분.
이 드라마 상에서는 1~8번까지의 내용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4~8번까지. 1~3번까지는 발단에 해당될 겁니다.
4~8번이라.
그렇다면 <단서찾기1>, <단서찾기2>, <다시 메인과 연결>, <비밀 일부 밝혀짐. 동료간 균열> 이 정도 내용이겠군요.
이 전개부분의 방향성은 어떤 내용을 쓰느냐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도 보통 발단에서 뜬금없는 일을 당하고 왜? 라는 의문과 비밀을 풀기 위해 움직이는 식의 내용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단서추적>이라는 방향성은 잘 맞을 것 같습니다.
◈ 내멋대로 시퀀스 분석 (2) 기타 영화
> 재난영화
재난영화의 경우에는 당장 눈앞의 소소한 위협을 맞이하고, 그것을 벗어나고, 그랬더니 벗어난 그 상황에서 새로운 위협이 새겨나고 다시 그것을 해결하는 내용이 반복되더군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 <투모로우>를 보면, 다음과 같은 식으로 전개되는 것 같습니다.
(도입부에서 지구의 온도가 올라감. 샘은 머리가 좋은 수재 혹은 천재임. 아버지 잭은 직업적으로는 유능하지만 그만큼 집안일에 신경을 못 쓰는 성격입니다. 아들과의 약속도 까먹기 천재라서, 부자관계가 삐걱댑니다. 그런 와중에 샘은 학교대항 퀴즈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뉴욕으로 향합니다.)
뉴욕에서 기상이변에 맞딱뜨린 샘은 1. 해일을 피해 도서관으로 피하고, 2. 도서관에 자리를 잡았던 여주가 파상풍 때문에 아프고 3. 마침 흘러들어온 러시아 화물선에 약이랑 식량 구하러 갔더니, 초반에 탈출한 늑대랑 부딪치고 4. 늑대를 피해 겨우 탈출했더니 이제는 무시무시한 냉기가 상공에서 흘러내립니다. 미친듯이 달려서 도서관으로 복귀해 책으로 불을 떼우는 것을 대처하지요.
그리고 워싱턴에서 아들이 뉴욕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은 잭은 아들을 데리러 눈보라가 몰아치는 저 밖을 도보로 걸어 뉴욕까지 가려고 합니다. 1. 동료 둘과 함께 눈보리 속을 달리다가 차가 눈에 처박혀 차를 버림. 2. 셋이서 일렬로 걷다가 하필 쇼핑몰의 유리천장 위를 걷는 바람에 셋 중 둘이 밑으로 떨어져 허공에 매달림. 3. 그꼴을 겪고도 전진하다가 냉기가 상공에서 쏟아져 내리자, 시급히 발밑의 아무 구멍으로나 뛰어듭니다(그 구멍의 끝은맥도널드). 4. 그곳에서 전열을 대충 재정비하고 다시 뉴욕으로 떠나지요.
재난 영화, 혹은 탈출 영화 계열이 재난을 만나거나 탈출을 하기 위한 행동을 하는 패턴이 반복된다는 것은 비교적 예전에 알아차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혼자서 정리하기를, “원하는 바가 그냥 쭉 잘 이어진다.”라고 했었지요.
> DC 코믹스 아쿠아맨
원래 히어로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좋아했던 것은 메카닉이 끝내줬던 아이언맨 정도입니다. 그것도 뒤로 가면 갈수록 슈트가 나노머신화되어 장갑복이라는 느낌보다는 레깅스슈츠의 느낌이 되어서 말이죠. 초중반부까지만 좋아합니다. 대충 뭐, 시빌워 정도?
그래서 마블이니 DC니 이런 구분도 잘 안 됐고요. 그냥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이렇게 주인공 이름으로 작품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아쿠아맨>은 뭐, 그 존재를 알게 된 것도 몇 년 전입니다. 당연히 원작만화가 아닌 영화입니다.
나무위키에서 <아쿠아맨>이 헐리우드 시나리오 구조를 가장 전형적으로 잘 살린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TV에서 해 줄 때 한 번 봤습니다. 그리고 플롯 분석. 본 지 시간이 좀 지나서(벌써 몇 달 전) 내용이 가물가물합니다. 틀린 내용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1) 쥔공이 수족관에서 범상치 않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2) 이후 성장한 쥔공이 잠수함을 이용해 해적질을 하는 해적들을 다 손봐줍니다. 이미 아쿠아맨이라는 이름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3) 일을 마치고(?) 뭍에 올라가 술집에 갔더니, 웬 아가씨가 찾아옵니다. 아가씨는 너님의 이복동생이 아틸란티스 연합왕국을 다 장악하고 지상도 먹으려고 한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너님이 걔 좀 말려달랍니다.
(4) 아쿠아맨은 그 제안을 깝니다. 아틸란티스 왕국의 여왕이었던 어머니는 다시 바다로 돌아간 뒤, 지상인과 이어졌다는 이유로 괴물들에게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그에 대한 원망 때문에 아틸란티스 일은 너님들이 알아서 하랍니다.
(5) 이 이야기를 술집에서 마치고 나오다가 험해진 파도가 넘쳐서 아버지가 그에 휘말립니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는데, 아틸란티스의 깽판을 그대로 놓아두면 그 여파로 지상도 위험해질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아가씨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 제1관문입니다. 뜨뜻미지근하던 주인공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6) 아틸란티스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이야기를 듣던 중, 현장을 급습한 동생(=이자 왕)의 부하에게 사로잡힙니다.
(7) 동생이 한판 뜨잡니다. 이기는 놈이 왕이 되자고요.
물론 아틸란티스 인의 특징, 결투의 방식 등등 모르는 것이 많은 아쿠아맨은 불리한 환경에 놓여 무기도 잃고 목숨도 잃을 위기에 처합니다.
(8) 아가씨가 기습을 해서 도와줍니다. 그리고 냅다 튀는 두 사람.
(9) 전열재정비에 들어갑니다. 아쿠아맨은 무기도 잃었겠다, 왕의 진정한 상징이라는 왕의 삼지창을 찾으러 갑니다.
물밑 왕국에서 얻은 단서를 해독하기 위해 사하라로 향하고,
사하라에서 왕의 삼지창이 있는 곳의 위치를 알아내고,
그들의 위치를 파악한 적의 습격을 당해 많이 다칩니다.
그래도 왕의 삼지창이 있는 곳을 향하고.
그곳에서 어머니도 만나고, 왕의 삼지창을 지키는 세상 무서운 괴물도 만나고, 왕의 삼지창도 찾습니다.
(10) 그 사이, 동생은 아틸란티스 연합을 이루는 다른 왕국을 까기 바쁩니다.
(11) 이윽고 모든 권력을 장악한 동생이 지상을 공격하려는 찰나, 물 속 동물들을 거느린 아쿠아맨이 그 앞을 가로막습니다.
(12) 부하들이 피터지게 싸우는 사이, 형제는 또 결투로 일을 해결합니다.
(13) 아쿠아맨이 이기고, 왕이 됩니다. 그리고 지상의 아버지에게는 (죽은 줄 알았으나 용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어머니가 되돌아갑니다.
끝.
이렇게 정리해놓으니 전개는 (6), (7) 정도인 것 같습니다.
동생에게 죽을 뻔 해서 동생을 막는다는 목표를 성취하지 못한 (8)이 위기.
(9)가 최종보스용 최강무기를 얻으러 다니는 내용.
(10~(13)이 절정, 결말, 끝.
보통 전개가 가장 길다고 하는데, 이 작품은 모든 단계가 비슷비슷한 길이로 구성돼 있는 것 같습니다. 최종보스 전용무기를 얻는 부분의 내용이 기타 다른 드라마나 영화, 게임보다는 좀 길게 느껴졌으니 말입니다.
◈정리하기
플롯을 짜면서 몇 번이나 생각한 것은 “어디 비슷한 내용을 가진 작품은 없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이제 막 구조를 갖춘 소설을 써보기 시작한 것이라, 일단 그 틀을 몸에 익히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니 플롯의 방향성이나 커다란 틀 정도는 보고 베껴도 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더랬지요.
그런 생각은 자주 했는데도 (그리고 플롯분석은 몇 번인가 해 봤는데도), 이렇다 할 성과는 없지 못했습니다. 어허~. 그랬는데 이번에는 또 약간이나마 깨달음을 얻은 것 같습니다. 저 방향성에 맞춰서 내용을 끼워넣어보니 어찌어찌 전체적인 틀이 잡히는 것 같더군요. 오오미.
그러고 보면, 전에 한 번 배웠던 “로그라인”과 역설도 그때는 와닿지 않았는데 지금은 뭘 말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 와닿는 것 같았습니다.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똑같은 일상만 보내며 시간을 축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름 뭔가를 축적하고 있던 모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