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 뒷 내용을 상상해 보라.
소설 쓰는 것과 관련해 주워들은 이야기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한 작품(그것이 소설이 됐든 드라마가 됐든 영화가 됐든)을 고른 뒤, 그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뒷 내용을 상상해 보라, 고 말입니다.
책이라면 손에 땀나는 부분에서 일단 책을 덮고, 그 뒤에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고.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매체라면 일시중지를 걸어놓고 생각을 해 보라고 하죠.
그래서 내가 생각했던 내용과 실제 전개가 일치하면 잘한 거고, 내가 예상한 내용과 실제 내용이 다르면 더 정진하라는 뭐 그런 말입니다. 그런 만큼, 골라야 하는 작품은 작품성이 좋아야 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이게 내용을 구상하는데 좋은 훈련이라고 합니다.
◈ 시퀀스를 생각해서 예상하면, 보이는 게 달라진다
그런데 전 평소 이 작업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한 번에 해치우기에는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귀찮아서 안 함. 그 대신이라고 할까, 드라마를 보다보면 “아 저거 어떻게 되겠네.”라는 예상 정도는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예상”이 구상훈련에 큰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애초에, 그 부분에 어떤 내용을 집어넣어야 할지 알아야 내 답이 왜 틀렸는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드라마의 후속전개 예상이 틀린 경우도 꽤 많았는데, 그때마다 대단한 감흥은 없었습니다. (틀렸으니) 기분은 안 좋았지만 굳이 계속 연연해야 할 필요도 없어서 “EIC, 틀렸네.” 하고 넘어가곤 했습니다. 사실, 계속 연연하고 계속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데 말입니다.
이러던 것이, 시퀀스별 - 혹은 5막구조의 단계별로 나누어서 후속내용을 예상해 보자 느껴지는 바가 달라졌습니다. 각 단계에 따라 ”아, 여긴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해.“ 라는 것을 생각해서 예상을 해 보자, 내가 예상했던 내용과 다른내용이 나오면 “아, 저 작가는 저런 식으로 풀어나갔구나. 저런 내용을 집어넣었구나. 나는 이런 점이 부족했던 거구나.”라고 직관적으로 깨닫게 되더군요.
앞서도 말했지만, 요즘 시퀀스의 전개방향을 익히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방영 중인 드라마 줄거리를 큰 이야기별로 나누어 봤습니다. S 본부에서 주말에 방영하는 드라마 <악귀>가 그것입니다. 저도 즐겨보는 작품 + 방영 중인 작품 + 재방송도 어마무시하게 자주 해줌 = 내용파악하기에 아주 좋았습니다. 그래서 시퀀스 분석, 분해, 방향성 따라하기(응)에 동원 좀 했습니다.
이 드라마 <악귀>가 클라이막스에 들어섰습니다.
지난 9~10화에서 지금까지 ‘악귀’를 없애려 했던 사람들이 왜 실패했는지 이유가 밝혀지고, 이제 그 오류를 바로잡아 ‘악귀’와 끝을 보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제 또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 위험해졌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오오미. 전 그 내용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9~10화가 방영하기 전, 9화부터의 이어질 큰 이야기 흐름 (시퀀스)를 예상했을 때에는 대충 이렇게 네 개의 덩어리를 생각했습니다.
1. 8화에서 죽음이 예견되던 그 분이 죽고
2. “악귀”를 없애는데 실패하면서 크게 한 방 먹고
3. 전열을 재정비(‘악귀’를 퇴치할 방법을 다시 정립) 해서
4. ‘악귀’를 퇴치한다.
이 중에서 3번과 4번 사이에 주인공 측이 이렇다 할 위협에 노출된다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악귀를 퇴치하는데 실패하는 시점에서 누군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크게 타격을 입었음.” > “그 데미지를 회복하고 재도전” 이라는 과정에서, “데미지를 회복한다.“는 내용을 나름 시련이라면 시련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반면에, 실제로 드라마 상에서는 “악귀 퇴치”를 실제로 행하지는 않습니다. 그 전에 오류를 깨닫고 올바른 방법을 다시 찾으려고 하지요. 주인공 팀의 ‘안전’과 ‘생명’이 위협받는 일은 없어서, 그로 인한 극적 사건을 발생하지 않는데요. 대신에 극적 긴장감은 다른 사람이 위험해지면서, 주인공들이 똥줄타게 되는 방향으로 발생됩니다.
오오오. 이것이 프로의 힘인가.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주인공과 등장인물을 굴리고 피를 말려서 매우 힘듭게 만듭니다. 거기까지 생각을 해 보니, 어떤 이야기이든 마지막 싸움 (혹은 최종보스전)을 앞두고, 새로운 강한 힘을 얻을 때에는 늘 이 고생 저 고생 하긴 했습니다. 직전 글에서 “악귀”와 함께 공부삼아 분석해봤던 ‘아쿠아맨’도 그러했습니다.
동생과의 결투에서 개깨진 아쿠아맨은 무기도 잃었겠다, 왕의 삼지창을 찾으러 갑니다.
1. 그 과정에서 우선, 이미 손에 넣었던 단서에 담긴 수수께끼를 푸는데, 그 직후, 동생님이 보낸 암살단에게 정말 죽지 않을 만큼 쥐어터집니다.
2. 그 고난을 겨우 극복하고, 왕의 삼지창이 있다는 곳 가까이 오자, 이제는 인근 바닷속을 꽉 채울 정도로 많은 수의 괴물들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습니다.
3. 또 딱 죽지 않을 만큼의 고생을 한 뒤, 왕의 삼지창이 있는 곳에 도착하는데 이곳에서 거의 준보스라고 해도 좋을 수호수와 또 목숨 걸고 싸웁니다. 그 강함은 주인공이 “왕의 자질”을 타고 나지 않았더라면 (즉, 주인공이 아니었더라면) 바로 끔살당했을 정도입니다.
아쿠아맨에서만 전열재정비 과정에서 세 번의 고초를 겪습니다. 그걸 내가 내 손으로 적었으면서, 왜 이 시점에서는 ‘고생을 더 해야 한다.‘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나 싶습니다.
◈ 정리하기
5막구조의 위기단계에서는 주인공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랬던 것을, 목표에 재도전하면서 이야기는 절정으로 치닫게 되고, 결말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제, 제가 예전에 즐겨하던 옛날 RPG 게임의 스토리를 인터넷을 통해 다시 한 번 훑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나. 보스들과 최종전투를 치르기 직전, 준보스의 수작 때문에 그 일대에 있던 사람들이 모조리 돌이 되거나, 종이 다 울리면 죽는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까, 특히 저 종 때문에 시간제한이 걸렸을 때에는 진짜 방향키를 열심히 조작해서 정말 미친 듯이 왔던 길을 되돌아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야말로 으랴랴랴랴 하면서 돌격했습니다. 그리고, 아군, 우리 편, 죄없는 마을 사람이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그 시련을 겪은 뒤, 보스를 잡을 수 있는 무기를 얻었더랬지요.
게임에서마저도 이리 친절하게 “보스전 전에는 힘들게 최종무기를 얻어야 한다(목표에 재도전 할 때에는 고초를 겪게 된다).”라고 말해주고 있는데 말입니다. 게임에서는 워낙 몬스터를 때려잡는 것이 일상이었기 때문일까요(단순히 이동하는 데에만도 몬스터와 싸워야 합니다). 신경도 안 썼습니다.
이런 얘기를 구구절절 왜 하느냐.
그 이유는 제가 습작으로 써보려고 하는 이야기에는 절정 직전 (그러니까 전열을 재정비해서 최종보스에게 재도전 하기 전)에 이렇다 할 고생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퀀스 작성 때 적어놓은 내용만 보면, 응? 이게 필요해? 그럼 꺼내지 뭐~. 라는, 도라에몽식 전개입니다.
그랬다가 주말에 “악귀” 드라마의 11, 12회 광고를 보고 마지막회 직전의 “똥쭐 타는 전개”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래그래. 저련 내용이 들어갔어야 해. 그래서 부랴부랴 후반부 시퀀스를 다시 재조정해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요. 그 단계에서 본능적으로 애들을 괴롭혀야한다, 위기감을 불어넣어줘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모양입니다. 파편화되긴 했지만 언뜻 언뜻 그런 내용을 망상해 둔 것이 있긴 합니다. 지금까지는 그냥 생각에 머물렀던 것인데, 그 망상의 파편들을 모아 시퀀스로 잘 정리해서, 전체 플롯에 이어붙여봐야겠습니다.
